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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BS의 <드라마시티> 폐지 결정은 드라마 감독들과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. 특히 KBS의 드라마 감독들은 폐지 결정이 난 후에 단체로 경영진을 찾아가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대응법을 모색하고 있다. 그러나 같은 감독들이라고해도 각각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. <얼렁뚱땅 흥신소>의 함영훈 감독은 미니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의 입장에서, <미우나 고우나>의 조연출이자 KBS조연출회의 간사인 이은진 감독은 조연출의 입장에서 <드라마시티> 혹은 단막극이 존재해야할 이유에 대해서 얘기한다.

: 현재 내부적인 분위기는 어떤가?
함영훈 감독
: 망연자실이거나 분기탱천이거나 한 것 같다. 사실 <드라마시티>를 없앤다는 얘기는 내가 입사한 이래로 계속 있었고, 항상 그걸 간신히 막아온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의지가 강한 것 같다.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에 드라마 PD 30명이 제작본부장, 편성본부장을 만나고 사장 면담도 별도로 신청했다. 사장님은 만나지 못했지만, 별관에 있는 드라마 PD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다. 그런데 지리적인 거리 외에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는 걸 확인했을 뿐인 것 같다.

: 어떤 차이인가.
함영훈 감독
: 경영진의 논리는 지금 회사가 적자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. 사실 나도 경영진의 그 논리에 할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고 그런 얘기도 이해하지만, 우리가 확인한 건 본관에 있는 경영 책임자들이 가지고 있는 <드라마시티>에 대한 생각이 현업의 감독들과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. 우리에게는 <드라마시티>라는 건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. 어떤 방송사나 프로그램이 잘 안되면 적자가 나고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보지만,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국 문을 닫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. 방송사가 어렵든 어렵지 않든 반드시 지켜야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법인데, 이를테면 방송사가 적자라고 뉴스를 없앨 수는 없지 않나. 마찬가지로 드라마국에서는 <드라마시티>가 없어져서는 안 될 최우선의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인데 본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.

“<드라마시티>를 없애면 4개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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: <드라마시티>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.
함영훈 감독: 요즘 식량안보 얘기를 자주 하는데, 물론 이건 내가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이라서 할 수 있는 얘기지만, KBS의 드라마 감독이라면 <드라마시티>를 마음속에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. 나는 이미 입봉을 했고, 미니시리즈도 했지만 언제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. 물론 공중파니까 일정 정도의 대중성이나 참신함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다 동의하지만 나름 <드라마시티>라는 공간에서 보장되는 자율성 같은 것이 있었다. 드라마의 근간에 있는 <드라마시티>를 없앤다는 건 앞으로 드라마 감독들은 작품에 대한 꿈을 꾸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.

: 재작년과 작년을 통틀어서 KBS에서는 다양한 포맷의 드라마들을 내놓았다. 2부작, 4부작, 8부작 드라마들을 내놓는 걸 보면서 그래도 KBS에서는 드라마에 대한 여러 대안들을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는데.
함영훈 감독: 사실 그런 시도들을 <드라마시티>에 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. 다만 작


함영훈 감독 “<드라마시티>폐지는 작품에 대한 꿈
을 꾸지 말라는 말”

년에 KBS의 미니시리즈가 잘 안된 건 사실이었지만, 다양한 취향의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. 그런데 경영진들은 그런 시도들이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걸로 보인다. 그건 드라마팀 전체에 대한 불신 같은 것이다. 그런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경영진과 우리의 견해가 다른 것이고. 양쪽 다 <드라마시티>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,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. 공식적으로는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고 좀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는 입장인데, 우리 입장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없애려는 시도가 계속 있었고 매번 가까스로 사수했기 때문에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. 없애는 건 쉽지만 다시 살리기란 어려운 법이다.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없어지면 완전히 없어지는 거라고 본다.

: <드라마시티>는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. 그런데 그에 대한 대안은 없는 상태인가.
함영훈 감독: 딱히 어떤 대안이 없다.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현재는 편성이 실행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중이다. 그런데 이번에는 경영진의 의지가 강하다는 인식을 받았다. 전혀 밀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. 그래서 대책 같은 걸 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. 그 동안 75명 정도 되는 감독들이 여러 가지 대안들을 제안하기도 했다. 어떻게 해서든 <드라마시티>는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고, 그래서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했지만 잘 수용되지 않는다. 그걸 보면서 경영진들의 의지가 확실하다는 걸 느낀다는 얘기다. <드라마시티> 없이는 KBS의 드라마를 살릴 수 없다고 얘기하면, 다른 데는 단막 없어도 잘 하는데 왜 그러느냐라고 하니까.

: 정말 <드라마시티>를 폐지하면 적자에 도움이 될까. <드라마시티>의 편당 제작비는 얼마나 되나.
함영훈 감독: 보통의 경우 편당 1억 정도 든다.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광고수익을 보면 <드라마시티>가 평균적으로 적자가 아닌 걸로 나오지만 2007년 한 해만 보면 편당 2천에서 3천 정도로 광고가 줄었다. 방송사의 전체 광고가 줄어든 영향이라고 해도 굉장히 안 좋아진 거다. 문제는 <드라마시티>를 없애려는 논리가 단지 경제적인 부분으로만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. <드라마시티>의 편당 제작비를 최대한 줄여서라도 이 프로그램이 존속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데도 통하지 않는다. 편성쪽 얘기를 들어보면 <드라마시티>를 없앨 때 다른 4개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.

“KBS 감독이라는 자부심의 근거는 <드라마시티>였다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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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<드라마시티> ‘반투명’ 으로 연출을 시작한 함영훈 감독은 독특한 취향의 <얼렁뚱땅 흥신소>를 만들었다.

: 그렇게 해서라도 <드라마시티>를 지키려는 이유는 뭔가.
함영훈 감독
: KBS에서 단 하나의 드라마를 해야 한다면 그건 <드라마시티>라고 생각한다. 사실 우리가 본관에 갔을 때 욕도 많이 먹었다. 그런데 그게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. 다들 죽을 힘을 다해서 드라마를 만들고 어떻게든 더 좋은 드라마를 위해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. 정말 자존심이 상하게 하는 건, 다른 드라마가 다 나가는데도 <드라마시티>만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. 내가 KBS 감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근거는 <드라마시티> 때문이었다. KBS는 다른 데는 없는 단막극도 가지고 있고, 시청률만으로 드라마를 평가하지 않을뿐더러 그것 때문에 조기종영이라는 극단의 조치도 취하지 않는 곳이라는 자부심. 그런 게 우리를 다른 방송사와 다른 조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는데, 그게 다 꺾여버린 것이다. <얼렁뚱땅 흥신소> 시청률 3% 나온 것보다 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. 반복하는 얘기지만, 우리가 우리 할 거를 다 하면서 <드라마시티>도 지키겠다는 게 아니다.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으니 제발 <드라마시티>만은 살리자라고 얘기하는 건데 그개 안통하니 답답한 상황인 거다. 지금 KBS에 <드라마시티> 출신이 아닌 감독이 어디에 있나.

: <드라마시티>가 없어진 경우,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.
함영훈 감독
: 방송국이 플랫폼으로만 기능하겠다고 생각하면 오로지 시장에서 잘 만든 걸 가져다가 틀면 된다. 그런데 그건 KBS라면 해서는 안될 일이다.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반발하고 있지만, 사실 드라마 감독들은 <드라마시티>가 없어도 작품을 만들고, 정년도 보장된다. 더 큰 문제는 지금 프리랜서로 일하는 작가들이나 이제 막 뛰어든 신인 연기자들이다. 그들이 성장해야 드라마 산업도 성장할 수 있는 일인데,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. 회사에서는 영원히 없애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, 그게 언제인지는 말해주지는 않는다. 모르기 때문이다. 옛날 SBS에서 <오픈드라마 남과 여>를 없앨 때도 그랬다고 한다.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고. 그게 언제인가. 그래서 회사의 말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거다. 드라마 시장이 커지면서 방송사에서 드라마가 중요해진 건 사실이지만, 문제는 이게 점점 더 돈이나 시청률 같은 사항으로만 평가된다는 점이다. 시장이 이렇게 되다보니 <드라마시티>는 작가들을 찾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. 외주제작사들이 모두 계약해서 데리고 있고, 그들은 아직 방영도 되지 않은, 방영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미니시리즈의 기획안을 쓰고 있는 현실이니까. 그들의 탓은 아니다. 시장이 커지고, 제작사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일이고, 드라마 시장이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상황의 결과라고 본다. 하지만 결국 그런 것들이 드라마를 망치게 될 것이다. <드라마시티>의 폐지의 결과가 당장 다음 시즌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. 그게 제일 큰 문제다.

: <드라마시티>를 지키거나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 개편에 부활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. 도움을 보태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.
함영훈 감독
: 기사들도 이번 일에 대해서 단발성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. 나 자신도 이 다음에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니까. 결국은 계속해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. 그게 <드라마시티>의 중요성에 대해서 회사에 계속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.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내부에서 태스크포스 팀도 만들면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.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<드라마시티>를 상기시키는 일, 단막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말하는 일, 바로 그런 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.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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